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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효원 칼럼 / 한의신문] 기질과 성격을 파악하는 것이 인간 이해의 첫걸음

관리자 2021-04-16 조회수 640

기고

한의학정신건강센터 & 정신건강 ③

“기질과 성격을 파악하는 것이 인간 이해의 첫걸음”

     

서효원 학술연구교수

경희대학교 한의학과


최근 들어 마이어스-브릭스 유형 지표, 줄여서 MBTI라고 부르는 유형검사가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MBTI 검사는 내향/외향, 직관/감각, 감정/사고, 인식/판단이라는 네 가지 축을 바탕으로 사람을 16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비교적 요약적이며 직관적이기 때문에 젊은 층에서는 인터넷상에서 “MBTI 팩폭(팩트폭력) 모음”과 같은 제목으로 특정 상황에서의 유형별 반응을 비교분석한 글을 공유하며 즐기기도 한다. 사람들은 왜 MBTI에 열광하는 것인가? 이러한 열풍의 기저에는 자신과 타인을 비롯한 ‘인간 이해’에 대한 욕구가 자리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해나 공감이 안 되는 일들이 계속되면 괴로워지기 때문이다.


나와는 달라도 너무나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까?

“선생님, 저는 남편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요. 대체 왜 그러는 걸까요? 그 사람 머릿속에 한번 들어갔다 나오고 싶어요.”

대인관계 문제로 한방신경정신과에 내원한 환자들은 주변 사람들과 의료진이 자신의 처지와 입장에 공감해주기를 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과 갈등 관계에 있는 타인을 이해하고 싶어 한다. 상대방의 동기가 무엇인지를 알면 오히려 속이 좀 풀릴 것 같다는 것이다. 

상대방이 똑같은 상황을 자신과 다르게 해석하거나, 자신과 전혀 다르게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에서 오는 불일치를 가장 답답하게 느낀다. 하지만 살면서 우리 자신과 생각과 감정이 완벽히 일치하는 ‘소울메이트’를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 우리는 복잡한 사회 속에서 나와 달라도 너무나 다른 사람들과 부대끼고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옳고 그른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다양한 인간 군상을 구분해서 정리해놓은 MBTI가 인기를 끌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MBTI 유형을 구분해서 살펴봄으로써 사람들은 어느 것이 좋고 나쁜 것이 아니라 그저 공평하게 다른 것뿐이라는 인식을 가지게 된 것이다. ‘나는 내향형(I)이고 저 사람은 외향형(E)이라서 이렇게 달랐구나’, ‘나는 직관(N)이 발달한 반면에 저 사람은 감각(S)이 발달했기 때문에 서로 인식하는 게 다르구나’하고 차이를 인정하면 불일치는 괴로운 것이 아니라 인간사회의 다양성을 나타내고 조화와 균형을 의미하는 긍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갈등 상대가 나쁜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나와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개인간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인정하기만 해도 다른 세상에서 온 외계인처럼 괴상하게 느껴지던 상대방이 비로소 나와 마찬가지로 장점과 단점을 모두 가지고 있는 한 인간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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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질과 성격의 정의

그런데 일상에서 사용하는 ‘성격’이라는 용어에는 사실 학술적인 의미의 ‘기질’과 ‘성격’이 혼재되어 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기질(temperament)이란 개인이 타고나는 성질로서 정서와 성격의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 발달심리학에서는 기질을 “생애 초기부터 관찰되는 정서, 운동, 반응성 및 자기 통제에 대한 안정적인 개인차”라고 정의한다. 성격(characteristics 또는 personality)은 학자에 따라 그 정의가 다양한데  한스 아이젱크는 “환경에 독특하게 적응하도록 하는 한 개인의 성품, 기질, 지성 등의 안정성 있는 조직”이라고 정의하였고 존 홀랜더는 “한 개인을 유일하고 독특하게 하는 특징의 총합”이라고 하였다. 즉, 성격은 오랜 시간, 거의 전 생애에 걸쳐 발달되고 형성되며 다양한 요소들이 모여 한 개인을 다른 사람과 구별되도록 한다.

성격은 발달 과정에서 후천적으로 형성되는 것으로 인간의 성숙과 관련이 깊다. 성격은 발달 정도에 따라서 적응적인지, 부적응적인지를 평가할 수 있기 때문에 좋고 나쁨의 구분이 있다. 극단적으로 부적응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개인에게는 성격장애(personality disorder)라는 진단이 내려진다. 


성격, 인간 이해의 실마리

타고난 기질에 따라서도 당연히 개인차가 발생하지만 적응/부적응, 성숙/미성숙과 더욱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은 성격이기 때문에 정신과 임상장면에서는 성격을 평가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정신과에서는 환자를 다면적으로 파악하고 평가하기 위해서 종합심리평가라는 것을 실시하는데, 이때 성격을 평가하기 위해 유소아인 경우 성격기질검사(TCI), 청소년 이상 성인인 경우 미네소타 다면적 인성검사(MMPI)를 거의 필수로 실시한다. 개인이 고유하게 가지고 있는 성격적 특성과 성숙의 정도를 파악하면 질병의 발달에 성격이 미친 영향, 환자가 주관적으로 느끼게 될 정신적 고통의 강도, 앞으로의 회복 과정에서 예상되는 장애물이나 자원(resource)을 예측할 수 있다.


한의학이 기질과 성격 이해의 새로운 관점을 제시할 수 있을까?

정신의학과 심리학에서는 TCI와 MMPI라는 표준화된 검사를 통해 인간의 고유한 성격을 파악하는데, 한의학에서는 지금까지 어떤 방식으로 인간의 성격을 연구해왔을까?

여기서 한의학은 관찰한 사항을 전체적 현상으로 분석하여 형신체계를 세웠고, 그 과정에서 정신건강 현상을 연구하는 방법을 발견하였다. 예컨대, 김도순은 이제마의 『동의수세보원』 및 『격치고』와 융(C. G. Jung)의 유형론을 통합하여 인간은 기질적으로 타고나는 우월기능(직관, 감각, 사고, 감정)이 있고 이를 통해 마음을 분석할 수 있다고 하였으며1), 강용혁은 이 관점을 보다 발전시켜 『사상심학』2)으로 정리하였다. 정리하자면, 그동안 한의계에서는 주로 이제마가 강조한 성정(性情)을 바탕으로 인간의 기질과 성격을 연구해온 것으로 보인다.

TCI에서는 자극추구, 위험회피, 사회적 민감성, 인내력, 자율성, 연대감, 자기초월의 차원적 위계로 평가하고 MMPI에서는 건강염려증, 우울증, 히스테리 등 병리적 차원으로 평가하는 반면, 사상의학에서는 인의예지(仁義禮智), 희노애락(喜怒哀樂) 등으로 사람의 기질과 성격을 구분하고 있다. 사상의학의 등장 이전에는 심(心)과 칠정(七情)이 한의학에서 인간의 정신적인 바탕을 설명하는 가장 핵심적인 개념이었다.

정신의학과 심리학에서 많이 활용하는 심리평가도구들을 우리도 그대로 활용할 수 있지만, 평가와 진단 결과가 한의중재의 결정으로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지기 위해서는, 보다 더 한의학적 지식과 지혜를 기반으로 한 평가도구의 개발이 필요하다. 

사상의학을 필두로 하여 한의학의 광범위한 지식들을 총망라한 한의평가도구의 개발이 시급한 이유이다. 이에 한의학정신건강센터에서는 개개인의 기질과 성격을 한의학의 시각에서 평가할 수 있는 도구를 개발하고자 하며, 더 나아가 신규 도구의 신의료기술 등재, 급여화를 추진하여 많은 한의사들이 임상에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새로운 장을 열고자 한다.


참고문헌

1) 김도순. 동의심학(東醫心學) 원리론. 동의신경정신과학회지. 1997;8(1):2-35.

2) 강용혁. 사상심학. 고양: 대성의학사. 2010.



서효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