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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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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신문] “참사가 PTSD와 화병으로 이행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

관리자 2024-03-11 조회수 10

“참사가 PTSD와 화병으로 이행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

재난 트라우마의 진료 가이드라인에 한의학 치료의 장점 뚜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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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우 한의학정신건강센터


PTSD(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는 이태원 참사 이후에 주목받고 있는 정신장애다. 정신과 진료실에서 간혹 만나게 되는 이 정신장애가 이제는 누구나 경험하는 장애가 되어버린 듯하다. 이태원 참사가 그러하다. 참사의 희생자와 가족, 당시에 그곳을 방문했던 사람, 혹은 이태원의 추억이 있는 사람, 뉴스를 보면서 접하게 되는 많은 사람에게 그야말로 참사이고 트라우마가 되고 있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정리해 보면서 문제를 풀어나가 보자. ‘외상’ 혹은 ‘트라우마’는 커다란 충격으로 일상에서는 잘 일어나지 않고 감당하기 어려운 자극을 말한다. ‘후’는 이후를 뜻하는 것으로 트라우마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인과 혹은 상관관계가 있는 것을 의미한다. 

 

‘스트레스’는 자극과 반응, 그리고 이들 간의 관계를 고려하여야 한다. 자극은 명백한 스트레스 사건을 말하는 것이고, 반응은 자극 이후에 나타나서 충격, 갈등, 소진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분노, 불안, 우울 같은 정서적 반응과 통증, 불면증과 같은 증상을 모두 말하게 된다. 

 

자극과 반응은 서로 간의 상호 작용을 통해 때로는 증폭, 때로는 완화되는 양상을 보이게 된다. ‘장애’는 일정 시간 지속하는 양상으로 치료의 대상이 됨을 말한다. 단기간의 반응을 굳이 급성 스트레스 반응이라고 하고, 이것이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지속되면서 PTSD로 이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지금의 이 시기가 급성 스트레스 반응에 그칠 것인지, PTSD로 이어질지에 대하여 결정적인 시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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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PTSD가 만연된 나라에서 살고 있어” 

 

한국 사회는 PTSD를 오랜 기간 반복적으로 경험을 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와 전쟁의 경험에서 비롯된 잠재적인 트라우마와 함께 여러 사건이 반복적으로 중첩이 되면서 고스란히 장애로 이어지고 있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의 지속으로 척결되지 않은 이른바 친일파 문제, 종전 상황이 아닌 일시적으로 전쟁을 멈추고 있는 휴전의 상황과 반복되는 빨갱이 논쟁, 그 이후에 재난이라고 불렸지만 해결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억울함과 분함을 지울 수 없는 사건들이 반복되면서 각각이 기억 속에 남아 장애를 지속시키고 있다. 우리는 그야말로 PTSD가 만연된 나라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PTSD의 치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은 문제를 드러내고 이를 다시 객관적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가능한 문제에 대하여는 해결을 위한 노력을 하고, 반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수용하는 것인데, 여기에 사건을 바라볼 수 있는 객관적 시각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시각이 있어야 최소한 납득이 되고, 용서에까지 이를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을 그저 덮어 놓는다면 이는 결코 문제의 해결이 아니고 또다시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불씨를 그저 잠시 시야에서 치우는 것뿐이기에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앞서 제기된 한국의 PTSD가 모두 해결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덮어 놓은 결과물이 아닌가 싶다.


PTSD, 한의학의 전통적 질병 개념인 ‘화병’ 연상

 

PTSD를 이야기 하다 보면 한의학의 전통적 질병 개념인 화병이 그러함을 알 수 있다. 억울하고 분함이라는 것을 풀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또 다른 자극이 있으면 언제든 폭발을 준비하고 있는 상태이다. 

 

흔히 휴화산에 비유하는데, 여전히 깊은 내면에는 불씨가 살아있는 것이다. 처음 자극이 있을 때는 단기간 분노 반응이 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불안과 감당하지 못하고 포기하는 절망과 우울함이 이어지고, 이어서 잠잠해지는 시기를 겪고 있지만, 그 속에는 늘 억울함과 분함이 쌓이고, 다른 이차적 자극이 있게 되면 이전의 불씨가 폭발하여 정서적인 문제뿐 아니라 여러 신체 증상을 일으키게 된다. 

 

중간에 있는 잠잠한 시기를 마치 해결이 된 것처럼 생각해 버리는 태도가 결국 화병을 단지 감추게 되는 것이고, 더 큰 문제를 보지 못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지금의 이태원 참사를 다시 보면, 결과의 희생자는 있지만, 원인은 나중에 밝히자고 주장을 한다. 원인을 찾는다고 하면서 특정한 어떤 한 사람 혹은 한 문제를 가해자로 지목해 덤터기를 씌우고자 하거나 도리어 사회의 전체적인 문제로 퉁치고 넘어가 버리고자 하는 듯하다. 실체는 점점 더 꼬이게 만들고 추모만을 강요받고 있다. 이전 세월호가 몇 년간 시간을 가지면서도 여전히 명백히 밝혀진 것이 없이 억울함과 한(恨)만을 남기게 된 것과 유사하다. 

 

참사로 인하여 발생한 후유증을 의료계가 나서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심리적 지원이다. 참사에 대한 심리적 지원은 필요하다. 그렇지만, 그러한 지원을 뒷받침해 줘야 할 기본은 사건에 대하여 투명하게 드러나서 피해자가 납득이 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문제를 해결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마음의 안정을 도모하는 치유로 결코 이어지지 않는다. 

 

도리어 이러한 노력을 마치 사건을 덮어 버리는 의도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치료를 위해 방문한 의료인을 적대시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피해자들은 여전히 언제든 분노가 일어날 수 있는 상태를 그저 덮어 버리게 되는 꼴이 되어 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심리적 안정의 기본은 문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위치에서 가능한 것이다. 


“억울함과 분함에 대한 치료가 필요하다”

 

억울함과 분함에 대한 치료가 필요하다. 억울하고 분함에 대한 문제는 화병 환자의 주요 증상이다. 분노를 삭이면서 남은 것은 여전히 살아있는 불씨이다. 이 불씨를 죽이는 것이 치료가 아니라, 이 불씨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고, 스스로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을 가지도록 지원을 하는 것이다. 

 

화병 치료를 하면서 화병 환자의 분노를 없애려고 시도할 수도 있지만, 분노의 감정을 문제 해결의 힘과 에너지로 승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노력을 통해 스스로 이해하고 또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이태원 참사가 벌어지면서 이제 그 잔재가 여기저기 어지럽게 드러나고 있다. 정신의학적 접근에서는 이 참사가 개인뿐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PTSD로 남지 않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잔재를 깨끗하게 치우는 것이 아니라 잘 분리하여,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최선을 다해 해결하고,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국의 PTSD가 화병으로 남겨지지 않기 위해 참사의 진실을 명백하게 알려져야 하고, 또 책임을 져야 한다. 이해가 되고 납득이 되어야 용서가 되고 받아들일 수 있으며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화병을 치유할 수 있게 된다. 

 

한의계에서 최근에 발간된 재난 트라우마의 진료 가이드라인에서는 한의학 치료의 장점을 잘 정리하고 있는데 △통합적 치료(심리증상+신체증상 함께 고려) △경제성/효율성(침 치료) △기존 치료의 대안(심리치료나 정신과 약물에 반응하지 않을 때) △자가관리법 제공(혈위 지압, 감정자유기법, 도인운동 등) △전통 지혜의 활용(한국인의 문화적 특성 고려) 등이 제시되어 있다. 

 

의료계의 한 축으로 이태원 참사를 안타깝게 바라보면서 한의계의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는 참사가 PTSD로 또 화병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그리고 시대를 돌아보는 성찰과 함께 변화의 힘과 에너지로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