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원고는 성 베네딕토 왜관 수도원 계간지 [분도] 2021년 봄 호에 실린 칼럼입니다.
[순례와 건강]
강동경희대병원 한방병원 김종우
“이제껏 어느 여행이 가장 좋으셨어요?”
여행이 대화의 소재거리가 되면 늘상 듣는 질문이다. [마흔 넘어 걷기 여행]이라는 책을 출간한 이후 걷기 좋은 길을 소개할 때도 이런 질문을 들었다. “어느 길이 가장 좋은가요?”
세상에는 그야말로 좋은 곳, 좋은 길이 너무나 많아 여기저기를 소개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간다. 그러나 대화를 마칠 무렵이면 정작 이런 말을 듣는다. “그래도 제주도에서 바라본 풍경만은 못해”, 하와이를 다녀왔다는 사람이 내뱉는 말이다.
이런 대화를 우리는 흔하게 만난다. 서로 간에 각자 좋은 곳을 이야기를 시작하다 보면 서서히 경쟁이 붙더니, 점점 더 먼 곳, 그리고 점점 다른 사람들은 가보지 못한 곳을 이야기하며 힘껏 자랑하게 된다. 그런데 자랑의 끝판에 가면 아무리 멋진 곳이라 해 봐야 북한산 인수봉만 못하다는 결론이 나기 십상이다. 세계를 돌고 돌아보니 바로 우리 집 앞이 가장 좋다는 것을 깨달은 것일까?
이런 대화를 정리하면, 좋은 곳, 좋은 길은 어디를 가느냐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도리어 언제, 어떻게 가느냐? 그리고 누구와 가느냐가 더 중요하다로 귀결된다. 가까운 친구와 방해받지 않고 그곳에서 온전히 머물렀던 곳과 길이 최고다에 모두들 동의한다.
그래도... 이런저런 여행 이야기를 하다가도 꼭 빠지지 않는 곳이 있다. 바로 산티아고 순례길이다. “그 많은 돈을 들여 겨우 걸으려 그곳까지 가?”라는 핀잔을 듣듯 오로지 걷기만을 목표로 설정하고 간 여행이다. 물론 산티아고라는 길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은 결코 아니다. 도리어 길은 평범하고 단순하여 다리는 온전히 걷기에만 집중하고. 밖보다는 자신의 내부에 집중하여 이런 저런 생각을 마음껏 할 수 있기에 “순례하기 좋은 길”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바로 걷기, 점심 먹고 또다시 걷기, 저녁 먹고 나서는 못내 아쉬워서 마을 산책하기로 구성되어 있다. 걷는 것 외에는 별다른 계획이나 목표도 없다. 오로지 걷는 것에 초점을 맞춰서 저녁에는 일찍 자고,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고, 오로지 걷는다. 하루에 4만 보를 훌쩍 넘는 오로지 걷기만을 하는 것이다. 아침에 출발하면서 “화두” 하나를 잡아들면 된다. 그저 “질문” 하나를 던지고 출발하면 된다. 목적은 생뚱맞기는 하지만, 누구나 한번은 그런 목적을 이야기하는데, 바로 “깨달음”이다. 순례가 주는 목적이기도 하다.
산티아고 순례길
단순한 길이다. 어떤 경우에는 반나절을 걸어서 도착할 장소가 저 멀리 한눈에 보이는 언덕 위에 서 있다. 3시간 정도의 시간을 거쳐서 바로 저곳, 눈에 보이는 곳에 도달하여 점심을 먹어야 한다. 가는 길은 그야말로 평원이다. 첫 시작에서의 장면과 중간, 그리고 도착점이 다를 것이 없다. 그러기에 걷기에만 집중할 수 있다. 처음에는 관심이 밖을 향하다가도 단순한 장면의 연속에서 관심은 어느새 내면을 향하게 된다. 내면으로 향하는 관심 역시 시간이 지나게 되면, 다시 밖으로 향한다. 그런데 이제까지 비슷하고 단순했던 풍경들에서 다름을 발견하게 된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다름을 찾게 된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사유는 더욱 넓어진다. 밖을 향한 사유의 시간이 조금 지나면 다시 지루하여지고, 다시 관심은 내면을 향한다. 이렇게 내면을 향하던 관심이 밖으로, 또 밖으로 향하던 관심이 안으로의 과정을 반복하면서 깨달음으로 이어지게 된다.
(밖) 멀리 보이는 풍경은 너무나 풍요로워 보인다. 언덕 위에서 넓게 펼쳐진 농가의 모습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안) 풍요란 것이 무엇인가? 행복이란 무엇인가? 과연 이런 곳에 사는 것이 풍요롭고, 행복한 삶인가? 이렇게 멋진 풍경 속에 왜 사람들은 이곳에서 탈출하여 도시로 향하는가?
(밖) 농가를 보니 그다지 깨끗해 보이지 않는다. 너른 평원을 보고 있으니, 이곳에서 일한다면 하루종일 땡볕에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니 이곳이 풍요롭고 행복한 곳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안) 그렇다면 풍요와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나는 지금 멀리 이곳까지 와서 왜 걷고 있는가? 풍요롭지도 행복하지도 않은 곳에서.... 그렇지만, 이렇게 걷는 것만으로 행복한데 굳이 내가 여기까지 온 까닭은?
(밖) 마침 초원에서 놀고 있는 소를 만났다. 소는 무엇을 먹었는지 매우 튼실하게 보인다. 한국에서 보았던 갇혀 있는 소가 아닌 초원을 뛰놀고 있는 소를 보니 다시 마음이 풍요롭고 행복해 보인다.
(안) 넓은 초원에서의 자유로움이 건강하고 풍요롭고, 행복하게 만드는 요체가 아닐까? 아마도 이러한 자유로움 속에서 걷기 위해 먼 이곳까지 왔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앞으로 한국에 가서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밖) 보이는 자연은 우리에게 무엇이든 줄 수 있듯이 펼쳐져 있다. 그들이 사는 조그마한 집은 자연에 비하여 한없이 작지만, 그 작은 집을 멋지게 꾸미면서 그들의 삶을 만들어나가고 있는 것이 보인다.
(안) 나에게 주어진 환경 속에서 스스로를 멋지게 꾸밀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조그마한 공간이라고 하여도 그곳에 나의 혼을 불어넣는 곳으로 만든다면, 스스로고 풍요롭고 행복해질 수 있을 거야.
이렇게 (안)와 (밖)의 대화는 하루 종일 이어진다.
걷기를 통해서 밖과 안이 끝없이 대화를 나누게 되는 것이다. 자연과 내면이 만나면서 깨달음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이 가장 좋은 순례길은 물론 아니다. 우리 집 주위의 평범하고, 쉽게 가고, 매일 걸을 수 있는 길이 가장 좋은 순례길이다. 서울 사람이라면 서울둘레길 정도, 조금 욕심을 내면 지리산 둘레길이나 제주 올레면 최고의 순례 코스다. 어디를 걷느냐가 아니고, 언제, 어떤 생각으로 또 누구와 걷냐가 좋은 순례길을 만드는 조건이다.
흔히들 인생의 전환기에 순례를 떠난다.
새 학기를 앞두고 학생들과 어떻게 만날지에 대한 기대를 하면서 순례를 떠난다.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할 때 순례를 떠난다.
부인을 여의고 혼자 살아가야 할 상황에 직면할 때 순례를 떠난다.
선거에서 떨어지고 나서 앞 길이 보이지 않아도 순례를 떠난다.
암 진단을 받은 충격을 안고 순례를 떠나는 경우도 있다.
물론, 나에게 주어진 휴가 1주일을 풍성하게 보내기 위해 순례를 떠난다.
순례의 길이 어떻든 간에 전환기에 접하는 막막한 질문을 가지고 떠난다. 그리고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질문을 던지고 걷다 보면 자신의 삶에 직면할 수 있고 또 답을 얻을 수 있다.
순례는 건강에 어떤 영향을 줄까? WHO(국제 보건기구)의 건강에 대하여 "질병이 없거나 허약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안녕이 역동적이며 완전한 상태를 말한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여기에 영적 건강이 추가되고 있다. 신체적인 건강은 몸이 튼튼한 것을 말하고, 정신이 건강함은 마음이 온전한 것이고, 사회적인 건강은 사회생활을 잘하게 하는 것인데, 영적인 건강은 무엇인가?
영성은 자아를 넘어서는 어떤 것에 대한 믿음의 광범위한 개념이다. 그것은 더 높은 권력에 대한 믿음을 중심으로 한 종교적 전통을 포함 할 수 있지만, 타인과 자연, 그리고 인류에 대한 개인의 연결에 대한 전체론적 믿음을 포함한다.
순례는
걷기를 하면서 “전신의 움직임을 통한 몸의 소통”을 함으로써 신체적 건강을 담보한다.
걷기를 하면서 “정신과 육체의 소통”하여 마음을 비움으로써 정신적 건강을 담보한다.
걷기를 하면서 “사람과 사람 간의 소통”을 함으로써 사회적 건강을 담보한다.
걷기를 하면서 “자신과 절대자와의 소통”하여 자연과 신을 만남으로써 영적 건강을 담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