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일단은 밖으로 나가서 걸읍시다.
강동경희대병원 한방신경정신과전문의 김종우
“탐진치(貪瞋癡). 인간의 세 가지 번뇌인데, 그 가운데 진(瞋)은 다스리기 어렵다.”
“모든 감정이 사람을 손상하지만, 그 가운데 분노가 가장 심하다.”
“분노는 스트레스에 대한 첫 번째 반응이며, 이후 불안이나 우울, 그리고 신체 증상으로 이어지는 출발점이 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3초면 분노할지 말지가 결정되고, 15초가 지난 시점에는 이미 인체의 호르몬과 자율신경계의 긴장 수치는 최고를 찍고, 어느새 화가 나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심장은 뛰고 있고, 혈압은 올라가 있으며, 얼굴은 달아오르고, 목덜미는 뻐근해진다. 받은 스트레스는 불과 몇 초 만에 우리의 몸과 마음을 변화시킨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가장 좋은 방법은 스트레스 현장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몸은 벗어났다고 하더라도 마음이 현장에 머물러 있게 되면 별다른 효과는 없다. 마음이 거기에 머물면서 집착해 있으면 괴로움은 배가될 것이고, 생각은 더욱 부정적으로 악화가 되어 스트레스가 줄어들기보다는 오히려 증폭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벗어나서 무엇을 할 것인가?가 중요해진다. 당연히 문제 해결을 위해 대책을 마련해야 하지만, 짧은 시간에 혼자서 할 수 없는 노릇이니 최소한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는 해야 그래도 안정이라는 것을 얻을 수 있다. 일단, 스트레스 상황에서 벗어나서 시간을 확보하여 차분하고 객관적으로 생각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이후에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으로 주의의 방향을 돌려 답을 얻을 수 있다면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로움을 얻을 수 있다. 이때 시간이 중요한 변수가 되는데 최소한 15분의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인체의 신경면역계 리듬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으니 그 시간을 확보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생각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그리고 자유롭게 생각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무엇을 할 것인가? 걷기다. 어떻게 걸어야 하는가? 마음챙김을 하면서 걷는다. 알아차림 혹은 마음챙김은 “지금 이 순간에 머무르며 충실하게 하는 작업인데 이를 위한 방법으로 자신의 행동을 찬찬히 관찰하는 것이다.” 이것을 걷기에 그대로 적용해 본다.
. 걷게 되면 다리가 움직인다. 머릿속을 가득 담고 있었던 에너지가 다리와 발로 향한다. 당장 머릿속에서 한참 분열과 팽창을 하고 있던 에너지가 머리와는 정반대에 있고 가장 멀리 있는 방향으로 향한다.
, 걷게 되면 일단 시선이 밖으로 향한다. 그동안 내부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고 충돌되었던 감정과 생각의 응어리가 일단 밖을 향하게 된다. 걷기 위해서는 우선 밖을 보고 주의를 해야 하는데, 이렇게 주의가 밖을 향하면서 내부에서 머물러 있는 주의가 분산된다.
. 걷는 동작은 매우 규칙적인 동작이다. 클래식 음악이 그렇듯이 반복되는 동작은 사람을 일단 안정되게 만들어 준다. 단지 걷기만 하더라도 리듬이 만들어지고 이어 여유가 생기고 유쾌함이 나올 수 있다.
. 일단 밖으로 나가게 되면 어디를 갈지 결정을 하게 된다. 이전과는 전혀 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동안 분노가 채웠던 생각의 영역에서 다른 생각할 거리가 생긴다. 방향성을 정하게 되고 목적지를 결정하는 생각이 머리를 채운기 시작한다.
. 막상 갈 곳이 없다고 하더라도 우선은 그저 걷기 행위만을 하게 된다. 일단 규칙적인 리듬이 주는 효과는 얻을 수 있다. 그렇게 걷다 보면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목적지가 선택된다. 그리고 목적지가 결정되면 그곳에서 무엇을 할지 생각하게 된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생각이다.
. 걷기를 계속하면서 다양한 자극을 받게 된다. 보이고, 들리고, 냄새를 맡게도 된다. 손바닥에서 바람을 느낄 수도 있다. 다양한 자극이 뇌의 영역을 넓게 지배를 하게 되면 이전의 갇힌 생각은 자리를 잃게 된다.
. 때로는 안정된 상태에서 아무런 생각이 없이 걸을 수도 있다. 명상의 고수들이 느끼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그러다가 번뜩 아이디어가 떠 오를 수도 있다. 생각의 빈 공간에서 번쩍하고 해결책이 떠 오르는 것이다.
. 목적지에 도달하게 되면, 자신의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커피의 향을 맡을 수도 있고, 이쁜 꽃 앞에 있을 수도 있다. 친구를 만날 수도 있다. 이전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곳에 와 있음을 알게 되면 이제껏 어떤 마음으로 이 걷기가 시작됐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내야 할지도 모른다.
걷기의 과정을 차근차근 관찰하면, 해결하지 못한 감정과 생각에서 시작하여 생각의 방향을 전환하고, 외부의 자극을 받고, 때로는 아무런 생각이 없다가, 때로는 어떤 생각에 집중하다가 드디어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임을 알 수 있다. 바로 철학에서 모르는 문제에 대하여 질문을 하고 이를 창조적으로 해석하고 과정과도 같다. 그래서 걷기를 철학이라고도 말한다. 철학자들은 대부분 걷기를 좋아하고 걷기를 통해 깨달음을 얻는다. 작가와 작곡가는 영감을 얻어 작품을 완성한다.
걷기는
활동이다. 인간 본연의 움직임으로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활동이다.
철학이다. 시작–불안–안정으로 이어지면서 정반합(正反合)으로 문제가 해결된다.
운동이다. 가장 기본적인 운동으로 인간이면 누구나 할 수 있다.
명상이다. 지금 여기에 오로지 머무를 수 있다.
그리고 걷고 나면 자신에게 보상하다.
따뜻한 차 한잔
샤워 후의 낮잠
마음을 정리하는 음악
스트레스를 해결한 자신을 만나게 된다.
[월간 불교문화]
2020년 3월호에 실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