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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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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정신건강센터의 연구자들이 진료와 연구, 일상을 병행하면서 생각하고 느낀 것을 여러분들과 공유하는 공간입니다.

[서효원 칼럼 / 한의신문] “균형과 조화라는 한의학의 지혜가 빛을 발하기를 바라며”

관리자 2022-04-12 조회수 441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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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정신건강센터 & 정신건강 ⑪

“균형과 조화라는 한의학의 지혜가 빛을 발하기를 바라며”


서효원 학술연구교수

경희대학교 한의학과


 

균형과 조화: 최적의 정신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조건


작은 자극에는 크게 반응하지 않고, 자극에 반응하더라도 평상시 상태로 자연스럽게 돌아오는 회복력을 우리 모두 타고난다. 하지만 역치 이상의 힘을 가해 용수철을 잡아당기면 다시 원래대로 줄어들지 못하는 것처럼, 회복력을 잃게 되면 한번 시작된 반응이 사그라지지 않고 오래 지속되거나 아예 고착화되어 증상으로 나타난다.

한방신경정신과를 찾아오는 환자들도 역시 “몸이 예전 같지 않아서”, “체력이 떨어지면서” 병이 시작되었다고 인식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갱년기 화병의 경우에는 전형적인 화병의 양상 외에도 심리적 스트레스 자극에 대한 예민한 반응, 감정조절의 어려움 등 심신의 균형과 조화가 깨진 것을 증상으로 호소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마음의 변화는 몸의 변화보다 훨씬 빠르고 변화폭도 넓기 때문에 신체건강을 유지하는 것보다 정신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더 어렵다. 한의학적으로 최적의 정신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균형과 조화’가 핵심이 된다.


몸과 마음의 조화


한의학 고전에서는 심(心)과 기(氣)를 주로 몸과 마음의 매개자로 설정하고 있다. 『황제내경·소문』에서는 “마음을 고요하고 담백하게 하여 비우면, 진기가 그에 따라 생기고, 정신이 안에서 지키는데, 병이 어떻게 오겠는가?(恬惔虛無, 眞氣從之, 精神內守, 病安從來.)”라고 하여, 마음의 평안은 신체건강과 연관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한편, 마음의 불안정이나 정서적 변동은 기(氣)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신체적인 병증을 유발한다. 『내경』에서 “지나치게 화를 내면 기가 올라가고(氣上) 너무 즐거워하면 기가 늘어지고(氣緩) 너무 슬퍼하면 기가 소모되고(氣消) 너무 두려워하면 기가 아래로 가라앉고(氣下) 너무 차가우면 기가 수렴만 되고(氣收) 너무 뜨거우면 기가 빠져나가고(氣泄) 너무 놀라면 기가 어지러워지고(氣亂) 너무 과로하면 기가 없어지고(氣耗) 이런저런 생각이 많으면 기가 맺힌다(氣結)”고 말한 구기증이 바로 그러한 결과물이다. 

즉, 마음(心)이 안정되고 기(氣)가 조화로워서 신체적 증상이나 질병이 없는 것이 바로 몸과 마음의 균형이 유지되는 상태이다. 이런 최적의 상태에 도달했을 때는 마음이 잔잔한 호수면과 같아 감정이 요동치지 않는다. 마음이 산란하고 감정의 편차가 나타나는 것은 몸과 마음이 현재 조화롭지 못하다는 반증이다. 


개인과 자연과의 조화


개인 차원에서 몸과 마음의 내적 연결성을 유지하는 것만큼이나 한의학에서 강조하는 것이 바로 사람과 자연과의 조화, 즉 천인상응(天人相應)이다. 자신을 둘러싼 외계(外界)와 교류해나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인간은 자극에 대한 반응으로써 살아가기 때문이다. 『황제내경·영추·본신편』에서는 인지과정을 심의지사려지(心意志思慮智)의 순서로 설명하면서, 인지의 첫 단계는 사물에 마음을 두는(任物) 심(心)이라고 했다. 『예기·대학』에서도 “마음에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으며, 들어도 들리지 않고,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 한다”고 하였을 정도이다. 

만약 관심사가 내적 세계에만 함몰되어 있거나, 마음을 한 곳에 두지 못하고 이리저리 불안정한 상태에 있다면 그 사람은 외부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혼자서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처럼 보일 것이다. 외부세계, 특히 자연환경과의 교류가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우리는 자연으로부터 언제든지 교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의 규칙성, 의연함은 언제나 인간에게 큰 감명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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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과 사회 사이의 조화


『동의수세보원·사단론』에서는 “호연지기(浩然之氣)는 간장, 폐, 비장, 신장에서 나오고 호연지리(浩然之理)는 마음에서 나온다. 인의예지(仁義禮智) 같은 사장의 기운을 넓혀서 채운다면 호연지기는 여기에서 나올 것이요, 비박하고 탐나한 마음의 욕심을 분명하게 가려낸다면 호연지리는 여기에서 나오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맹자가 말했던 사단(四端)과 호연지기를 거듭 강조하였다.

한의학 의서에는 사회적 인간상에 대해 서술된 내용이 비교적 많지 않으나, 한의학의 근간이 되는 유학에서는 군자(君子), 대인(大人)과 같은 사회적 도덕성을 지닌 사람을 이상적인 인간상으로서 구체적으로 제시해왔다. 유학에서 강조하는 사회적 규범은 대인관계로부터 빚어지는 갈등을 해결할 뿐만 아니라, 원천적으로 갈등의 발생을 예방하는 데 기여한다. 

유교적 가치는 매우 수준 높은 사회기술(social skill)에 해당한다. 사회생활을 행함에 있어 미성숙하다면 대인관계의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고, 반복적인 대인갈등은 만성적인 긴장과 스트레스로 이어지게 된다.


단계별 균형과 조화를 위한 접근이 필요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정신건강을 위한 균형과 조화에는 여러 차원이 존재한다. 환자들이 어떤 레벨에서의 문제가 원인이 되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정신과 임상에서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몸-마음, 개인과 자연, 개인과 사회 사이의 조화를 객관적으로 측정하거나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없다. 그래서 한의학정신건강센터에서는 이러한 한의학의 지혜와 관점에 따라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하고 신규 한의심리평가도구를 개발하고자 하는 것이다.

만약, 면담 및 자기보고식 평가 결과를 종합하여 환자가 어떤 영역에서 균형 상태에서 벗어나있는지, 어떤 부분을 해결해주어야 하는지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면 그 다음은 각각의 문제에 맞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와 같은 균형과 조화라는 측면에서 정신과 환자들을 바라보는 것은 기존 정신의학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관점이 될 수 있고,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해줄 수도 있다.

보통 상담, 명상, 기공 등과 같은 비약물적 요법들은 병의 종류, 중증도에 따른 솔루션을 제시하기보다는 ‘만병통치약’식의 접근을 해왔다. 하지만 본 센터에서는 화병과 우울증에 대한 ‘맞춤형’ 처방이 가능하도록 연구를 설계하고 있다. 특히, 스트레스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으로서 분노 반응은 가장 일반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분노에 대한 평가·분석 및 치료에 대한 표준적인 알고리즘을 도출하는 것이 목표이다.


한의학정신건강센터가 그리는 미래


한의학정신건강센터에서 분노사회의 해결을 위해 국민, 국가, 한의사를 대상으로 그리고 있는 궁극적인 모습은 다음과 같다.

첫째, 국민들이 정신적인 고통(특히 분노)을 극복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한의학의 지혜를 활용하고 한의약을 이용하는 것.

둘째, 한의사들이 더욱 발전된 한의 진단 및 치료 기술을 한방신경정신과 진료영역에서 활용하는 것.

셋째, 국가에서 치매안심센터, 국가트라우마센터와 같은 정신건강을 위한 공공의료 체계에 한의약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것.

 

향후 5개년(2022~2026년)에 걸쳐 이와 같은 이상향을 실현해나가는 것이 본 센터의 구체적인 실천 전략이 될 것이다. 첫 칼럼에서 화병과 우울증 환자들이 힘들 때 한의원부터 먼저 방문하고 한의약을 통해 행복과 건강을 회복할 수 있도록 통념을 깨는 연구를 하겠다고 다짐했던 초심을 잃지 않고 한의계와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의미 있는 연구를 지속해나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