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효원 학술연구교수
경희대학교 한의학과
한의학정신건강센터
2020년 8월 19일에 과제가 시작되어, 2021년은 센터의 연구단계로는 2차 연도에 해당된다. 만으로 1년을 채운 시점에서 센터의 성과를 공유하고자 한다.
초기 1년간 우리 센터에서는 화병척도의 개정을 위해 화병의 개념을 다각도로 재확인하고, 한방병원 기반의 한방신경정신과 외래환자 레지스트리를 구축하였으며, 융합연구를 위한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
화병척도의 개정
화병의 구체적인 진단기준으로는 화병면담검사1)(HBDIS)를 제시할 수 있다. HBDIS에 따라 화병으로 진단하기 위해서는 화병면담검사의 핵심 신체/심리 증상, 관련 신체/심리 증상 기준을 만족하고, 심리사회적 기능저하가 동반되어야 하며, 관련 스트레스가 증상 발생 이전에 존재하고, 증상이 신체적 상태나 약물로 인한 것이 아니어야 한다.
화병의 진단기준이 미국 정신의학회의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DSM) 진단기준에 부합하게 잘 정의되어 있고 타당화 연구까지 진행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화병의 개념 연구부터 다시 시작한 것은 화병을 학술적으로 범주화시켜 연구하면서 환자들이 일반적으로 경험하는 고통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는 자기반성 때문이다.
센터에서 한방신경정신과 전문의를 중심으로 패널을 구축하여 화병척도2)에 대한 전문가 의견을 수집해본 결과, 기존의 화병척도는 초기 선별검사로는 적합하나 환자들의 증상 심각도의 변화를 측정하는 데는 부족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센터에서 발표한 '화병 경험에 대한 질적 연구의 체계적 문헌고찰'에서는 화병의 핵심적인 경험을 분노 각성(Anger arousal)-비난(Blame)-통제 불가능한 신체 및 심리 증상(Uncontrollable physical and emotional symptoms)-타협과 일시적 대처(Compromise and temporary coping)'로 보았으며3), 전문가 패널에서는 화병 증상의 중요한 특징으로 분노감뿐만 아니라 신체증상(예: 가슴답답함, 치밀어오름, 열감, 얼굴이나 목, 어깨의 불편감)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또한 화병에서 많이 나타나는 증상이지만 감별진단에 비특이적인 항목(예: 두통, 어깨결림, 우울감 등)은 화병척도에서 배제되어 있는 것이 제한점으로 지적되었기 때문에 이를 고려하여 화병척도의 개정판을 개발할 것이다. 화병척도 개정판은 타당화 연구를 거친 후 한의신의료기술로 등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방신경정신과 내원환자 대상 관찰연구
일반적으로 한의임상에서 주상병으로 가장 많이 보게 되는 것은 근골격계 질환일 것이다. 근골격계 질환에 비하면 정신적인 고통을 주호소로 한의원에 내원하는 환자는 아마 전체 임상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인들에게 정신적 고통이 얼마나 만연해있는지를 생각해보면, 한방신경정신과 영역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다. 만약 환자들이 남모르게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경험하고 있다면, 주호소와 정신적 문제 사이의 연관성을 고려해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 한방신경정신과에서는 어떤 정신적 고통을 다빈도로 만나게 되는지, 환자들은 치료를 받으면서 어떤 경과를 거치는지, 어떤 개선을 경험하는지 연구되어 있다면 일선의 많은 한의사들도 임상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때 기초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센터에서는 다기관 레지스트리(환자등록체계)를 구축하였다. 이번에 구축한 레지스트리는 2008년에 화병연구센터에서 실시한 화병역학조사가 모델이 되었다. 화병역학조사는 전국의 한방병원에서 화병으로 진단되거나 스스로 화병이라고 생각하는 대상자를 추적 관찰한 것으로4), 화병 환자의 특성을 발표한 대표적인 연구 중 하나이다.
한의학정신건강센터의 레지스트리는 이름을 'KMental'이라고 명명하였으며, 화병과 울증뿐만 아니라 우울장애, 불안장애, 스트레스장애, 불면장애 등 다양한 정신장애를 폭넓게 조사한다. 주요 수집항목은 △한의 정신장애(화병, 울증) 및 DSM 정신장애 진단 △한의 치료내용 △심리평가척도(화병, 우울, 불안, 분노, 불면 척도 등) △한의평가척도(사상성격검사, 미병설문지) △의료비용 △초진단적 스펙트럼 관점에서의 환자평가 등이다. 레지스트리에 등록된 환자는 치료가 종료되었더라도 2026년까지 장기관찰을 지속할 것이다. 장기 프로젝트인 만큼 많은 한의사들이 관심과 기대를 가지고 레지스트리 연구 결과를 기다려주었으면 한다.
역량과 성과의 확장을 위해
센터에서는 일차 임상연구를 진행할 뿐만 아니라, 올바른 지식의 확산을 위해 매월 한의사 월례회, 방학마다 한의대생 캠프를 진행하였고, 9월에는 대한한의사협회에 감정자유기법(EFT) 보수교육 강의를 등록하기도 하였다. 연구란 논문으로 결과가 발표된다고 끝이 아니라 임상으로까지 확산되고 적용될 때 비로소 빛을 발하게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센터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연구의 가치 중 하나는 바로 ‘융합’
한의학 연구는 한·중·일에서만 집중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세 나라의 실정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중국과 일본의 연구결과를 국내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보니 한국 한의학에 적합한 연구 성과는 우리 내부에서만 창출되고 있는 실정이다. 안타까운 것은 국내 한의계에서는 간신히 자급자족(自給自足)하며 한의학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우리 학문이 고립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한의학정신건강센터에서는 국민의 정신건강 증진을 목표로 더 많은 학문과 융합해나가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한 발판으로 센터에서는 모바일헬스(mHealth) 애플리케이션(어플)을 개발하는 ㈜디맨드와 연구를 함께해나가고 있으며, 올해 들어 보건학 석사, 심리학 박사 각각 한 분씩을 전임연구원으로 모시게 됐다.
한의학과 타 학문과의 융합
코로나19 시대에 mHealth 어플, 비대면 전화진료(telemedicine)의 활용가능성이 점점 더 주목을 받고 있다. 한번 불붙은 원격진료 이슈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계속해서 의료계에 바람을 불고 올 것이다. IT 기술과 한의학적 솔루션을 접목시켜 우리가 비대면 상황에서 어플을 통해 환자들에게 한의치료기술을 제공할 수 있게 된다면 어떨까? 정신과 분야에서는 환자들의 자조(self-help) 능력을 증진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어플을 활용한다면 환자들에게 맞춤형 관리를 제공하는 것이 훨씬 용이해질 것이다.
한편 우리 센터에서 융합을 시도하고 있는 보건학과 심리학은 한의학에 색다른 도구와 관점을 제공해줄 수 있다. 보건학은 개인 단위가 아니라 집단 단위의 건강 문제를 다루는 학문이기 때문에, 보건학자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문제를 분석하고 정책을 제시하는 데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 센터가 가지고 있는 “한의학 기반으로 정신건강을 관리하고 지속적인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HQ의 역할 국민 정신건강을 위한 Hub의 역할을 담당하는 한의학정신건강센터”라는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보건학적 접근이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심리학은 추상적인 개념이나 용어를 경험적으로 측정이 가능하도록 조작적 정의(operational definition)를 도입하여 과학의 영역에서 발전을 이뤄온 학문이다. 이는 한의학적 개념을 연구할 때 필요한 접근방식으로서, 특히 한방신경정신과 영역에서는 심리학과 만났을 때 더욱 시너지가 날 것이다.
이처럼 타 전공자와 융합연구를 시도하면서 한의학의 저변을 넓혀나가게 되면, 한의학의 상아탑에서 빠져나와 여러 학문 분야와 교류하고 나아가 국민들과도 눈높이를 맞춰 소통할 수 있게 될 것이라 기대한다. 그 길에 한의학정신건강센터가 핵심적인 기여를 할 수 있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고 보람될 것이다.
참고문헌
1) 김종우, 권정혜, 이민수 외. 화병면담검사의 신뢰도와 타당도. 한국심리학회지: 건강. 2004;9(2):321-31.
2) 권정혜, 김종우, 박동건 외. 화병척도의 개발과 타당도 연구. 한국심리학회지 : 임상. 2008;27(1):237-52.
3) Suh HW, Lee KB, Chung SY, et al. How suppressed anger can become an illness: a qualitative systematic review of the experiences and perspectives of Hwabyung patients in Korea. Frontiers in psychiatry. 2021;12.
4) 김종우, 정선용, 서현욱 외. 화병역학연구 자료를 기반으로 한 화병 환자의 특성. 동의신경정신과학회지. 2010;21(2):157-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