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분노는 위험한 감정인가? 인간의 기본 감정으로서의 분노
동의대학교 한방신경정신과 조교수
권찬영
(다음 내용은 계속해서 추가 업데이트될 수 있습니다)
#1. 분노는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으로, 맥락에 따라 여러 기능적 의미가 존재한다.
분노는 위험한 감정이기 이전에, 일반적으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감정 중 하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렇다면 분노는 왜 발생하는 것일까? 분노라는 감정의 의미는 무엇일까? 분노라는 감정에 대해 연구를 해온 연구자들은 분노가 (1) 신체고통 상태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나, 포식자로부터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게 하는 감정, 또는 (2) 자신이 지향하는 바가 외부 세계에 의해 차단되고 좌절감을 느꼈을 때, 목표를 지향하는 행동을 돕는 감정으로 설명한다. 또한 사회적인 의미에서 분노의 표현은 (3) 공격성을 드러내며 갈등 상황에서 상대에게 공포심을 갖게 하거나, 굴복하게 하려는 의도로 사용되는가 하면, (4) 다른 사람들과 같은 기분을 공유하기 위해 분노의 감정을 사용하기도 한다. 즉, 여러 맥락에 따라서 분노가 가지는 의미가 다를 수 있다.
출처. Wilkowski BM, Robinson MD The anatomy of anger: an integrative cognitive model of trait anger and reactive aggression. J Pers. 2010 Feb;78(1):9-38.
출처. Panksepp, Jaak. Affective neuroscience: The foundations of human and animal emotions. Oxford university press, 2004.
출처. Scherer, Klaus R., and Paul Ekman. Approaches to emotion. Psychology Press, 2014.
#2. 문화의 차이가 분노의 차이를 만들수 있을까?
그렇다면 과연 분노 표출은 문화의 차이에 영향을 받을까? 미시간대학교, 스탠포드대학교, 위스콘신대학교, 동경여자대학교, 동경대학교 연구팀이 공동으로 미국인과 일본인에서 사회적 지위와 분노 표현 간의 관련성을 비교한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있다. 미국인 대표표본 1,054명과 일본인 대표표본 1,027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이 연구의 결과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경우 ‘주관적’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에 비해 지위가 낮은 사람에서 분노 표현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이 과정에 좌절감이 중요한 매개요인이었다. 반면, 일본 성인의 경우 ‘객관적’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에 비해 지위가 높은 사람에서 분노 표현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그들이 인지하고 있는 결정권한이 중요한 매개요인이었다.
연구진은 이러한 차이에 대하여 미국(서양)과 같은 독립적인 문화적 맥락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주관적 평가가 분노감 표출에 상대적으로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았다. 반면, 일본(동양)과 같은 상호의존적인 문화적 맥락에서는 소속감과 사회적 조화가 강조되기 때문에, 분노 표현에 대한 사회적인 규제가 존재하는데, 권력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분노가 그들의 힘과 권위를 나타내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출처. Park J, Kitayama S, Markus HR, Coe CL, Miyamoto Y, Karasawa M, Curhan KB, Love GD, Kawakami N, Boylan JM, Ryff CD. Social status and anger expression: the cultural moderation hypothesis. Emotion. 2013 Dec;13(6):1122-1131.
2013년에 발표된 이 연구 결과로 2021년 오늘날의 한국 사회 내 분노 문화를 들여다보면, 점점 서구화되어가며 개인의 독립성을 중시하게 되는 현대 동양 문화권에서 발생하는 분노 표출의 문제를 일부 설명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즉, 과거 동양 문화권에서는 권력구조에 따른 분노 표출과 분노 억제가 두드러졌고, 분노 억제가 화병(火病)이라는 병을 야기했다면, 오늘날에는 기존에 동양 문화권에서 중시해오던 상호의존성의 가치가 줄어들고, 상대적으로 독립성의 가치가 증가함에 따라 주관적으로 인지되는 낮은 사회적 지위가 좌절감을 야기하고, 이 좌절감이 분노 표현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으로 해석가능하다.
#3. 분노가 항상 건강에 악영향을 초래하는 것은 아니다.
위와 같은 연구팀에 의해 시행된 한 편의 연구는 분노가 꼭 건강에 해가 될까? 라는 질문에 답을 내리는 것을 도울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미국인 표본(1,054명)과 일본인 표본(382명)을 대상으로 분석을 시행한 이 연구에서는 분노의 여러 측면과 건강 위험(염증 상태, 심혈관계 위험) 간의 관련성을 분석했다. 그 결과, 분노 표현이 건강 위험과 유의한 관련성을 보였는데, 미국인의 경우 분노 표현이 높을수록 건강 위험도 함께 높은 반면, 일본인의 경우 분노 표현이 높을수록 건강 위험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분노를 이해함에 있어서 사회적 및 문화적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하기도 하지만, 상황에 따라 분노 표현이 건강에 위해가 될 수도, 이득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출처. Kitayama S, Park J, Boylan JM, Miyamoto Y, Levine CS, Markus HR, Karasawa M, Coe CL, Kawakami N, Love GD, Ryff CD. Expression of anger and ill health in two cultures: an examination of inflammation and cardiovascular risk. Psychol Sci. 2015 Feb;26(2):211-20.
흔히 분노 표현과 혈압 상승 간의 관련성에 대해 대중에 잘 알려졌지만, 앨라배마대학교 심리학과 연구진이 시행한 연구에서도, 분노가 건설적인가 여부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조절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즉, 건설적인 분노를 표현하고 있는 사람들은 혈압에 대해서는 오히려 휴식기 혈압이 더 낮은 것(심혈관계 건강의 보호요인)으로 나타난 것이다.
출처. Davidson K, MacGregor MW, Stuhr J, Dixon K, MacLean D. Constructive anger verbal behavior predicts blood pressure in a population-based sample. Health Psychol. 2000 Jan;19(1):55-64.
이러한 결과들을 정리하면, 분노가 꼭 신체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만은 얘기할 수 없다. 분노가 발생하는 사회적 및 문화적 맥락이 고려되어야 하며, 또 개개인이 분노를 건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는지 여부도 신체건강에 미치는 방향성에 영향(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인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인지)을 미칠 수 있다.
#4. 개인 수준의 분노를 넘어선 사회적 분노
최근에는 개인의 분노 문제 뿐 아니라, 사회적 분노 또는 공분도 중요한 분노 관련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위에서 살펴본 미국인과 일본인 간의 분노 표현에서 문화적 차이를 비교한 연구에서 알 수 있듯이, 동아시아권의 상호의존적인 문화적 맥락에서는 분노 표현이 일반적으로 억제되어왔고, 일부 특권층이 자신의 권력을 위시하려는 수단으로 분노를 표현해왔는데, 점차 이러한 불합리함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그것이 사회적 분노로 이어져 자신의 손상된 존엄성을 키우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어 온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한국에서 발생한 대표적인 사례로, 2014년에 있었던 ‘땅콩회항’ 사건을 들 수 있다. 당시 이 사건에서 발생한 분노 현상을 3가지 측면에서 분석한 흥미로운 논문이 있다. 우선 경영자와 노동자 간에 형성되어 있는 무시와 적응이라는 사회규범 속에서, 경영자는 자신의 경영능력을 입증해야 하는 불안을 감추기 위해 종종 분노로 자신의 통제권을 드러내며 분노 표현을 할 수 있다. 반면, 노동자는 굴욕감과 좌절감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데, 자신의 손상된 존엄성을 되찾기 위한 적극적 행위로 분노를 표현하며 ‘내부 고발자’와 같은 행동을 할 수 있게 된다. 마지막으로, 간접적으로 이 사건을 접했으며, 유사한 사회적 조건에 놓인 사람들이 약자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며 집단 분노가 형성되고, 이러한 집단 분노는 경영자와 노동자 간의 불평등한 지위-권력 구조를 바꾸려는 목적 또는 자신에게 모욕감이나 좌절감을 준 대상을 현 사건에 투사해서 복수하려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 이 논문의 요지이다. 특히, 경영자와 노동자의 역할, 통제권, 존엄성 회복 등을 위한 목적으로서 개인적 수준에서의 분노가 발생했다면, 유사한 사회적 조건에 놓인 사람들이 공감대를 형성함으로써, 경영자에게 타인을 투사하거나, 나아가 사회의 불평등한 구조를 바꾸려는 건설적인 목적으로 집단 수준의 분노가 발생했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 흥미롭다.
출처. 조계원. '땅콩회항' 사건에 나타난 세 가지 분노와 사회관계 : 지위-권력의 불평등을 중심으로. 경제와사회. 2018;(118):306-3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