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병은 한국형 우울장애의 한 형태인가?
경희대학교 한의학과 서효원 (한방신경정신과 전문의)
화병은 한국의 문화관련증후군으로서,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화병'은 한국에서 특수하게 나타나는 독립된 정신장애인지 혹은 우울증의 한국형 아형인지 논란이 많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연구를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2018년에 심리학과, 경영학과, 정신건강의학과로 구성된 다학제적 연구팀에서 한국형 역기능우울척도와 한국형 역기능우울 하위모듈척도를 개발하였는데요.
역기능우울척도는 환자나 내담자의 전반적인 우울수준을 알려주는 반면, 역기능우울 하위모듈척도는 부가적으로 개 별 환자(혹은 내담자)의 세부적 우울 특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즉 환자(혹은 내담자)의 우울증상에 따라 관련 있는 하위모듈을 선별적으로 사용하여 특정 우울 문제의 심각도를 파악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연구팀에서는 역기능우울 하위모듈척도를 개발하기 위해 문헌 고찰을 진행하고 연구자 논의를 통해 6가지 하위모듈을 결정하였고, 그 중에는 화병 모듈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위모듈 6가지를 모두 살펴보면, 한국 문화 고유의 질병인 ‘화병’과, 양극성 우울장애와 관련이 깊은 것으로 알려진 ‘기분조절곤란’, 여성특유의 우울증 특징을 감별하기 위한 ‘여성우울’, 우울증과 동반이환이 높은 ‘불안’, 기혼자의 경우 배우자와의 갈등이 우울증에 크게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배우자 갈등’이 포함되었고 마지막으로 ‘자살위험성’도 포함됩니다.
앞서 말씀린 것처럼, 지금까지 김종우, 민성길 교수님 등 화병 전문가들은 화병이 독립된 질환이라는 내용의 연구를 주로 발표해오셨지만, 한편으로는 화병과 우울증의 공병비율이 약 70%로 매우 높다보니 화병을 우울장애의 아형으로 보는 입장도 있었습니다. 본 연구팀에서도 그러한 논란에 대해 언급하며 한국문화 고유의 질병으로 알려진 화병이 우울 장애에 동반하여 함께 나타날 수 있고, 고각성 상태의 우울증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화병 하위모듈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하였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한국형 역기능우울척도에서 '화병 모듈'은 현재 한의계에서 많이 활용되고 있는 화병 증상 척도를 준거척도로 사용하여 화병 증상 척도와 상관계수가 높은 아래의 8 문항을 최종적으로 선정하였습니다.
●● 화병 모듈 문항
1. 식은땀이 돋는다.
2. 뒷골에 뭔가 쭉 올라오는 것 같다.
3. 몸이 떨린다.
4. 목에 뭐가 걸려 있는 것 같다.
5. 가슴이 답답하고 속에서 불이 난다.
6. 명치끝이 답답하다.
7. 숨 쉬는 게 답답하다.
8. 인생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 본 연구는 예비단계이지만, 만약 한국형 역기능우울척도의 활용도가 높아지면 화병과 우울증의 상관성과 차이에 대한 데이터가 많이 축적될 것으로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