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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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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정신건강센터의 연구자들이 진료와 연구, 일상을 병행하면서 생각하고 느낀 것을 여러분들과 공유하는 공간입니다.

[서효원 칼럼 / 한의신문] 화병과 우울증 환자들이 한의원부터 방문하는 날을 기대한다.

서효원 2021-02-26 조회수 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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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한의학정신건강센터 & 정신건강 ①

“화병과 우울증 환자들이 한의원부터 방문하는 날을 기대한다”

서효원 학술연구교수

한의학정신건강센터는 ‘균형과 조화를 통한 최적의 정신건강’을 추구하는 것을 미션으로 하고 있다. 궁극적인 목표는 한의학으로 한국 사회가 행복하고 건강해져서 특히 사회적인 분노가 해결되는 것이지만, 그에 앞서 센터에서 비중을 두고 해결해야 할 주요 정신장애는 화병과 우울증이다.

화병과 우울증은 한국 사회의 정신건강 이슈로서도 매우 중요할 뿐만 아니라 한의정신과학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화병과 우울증은 한의학에서 보는 정신장애의 두 축

동의보감에서 언급된 칠정상의 병인병기는 기울(氣鬱), 허(虛), 화(火), 담음(痰飮)으로 귀결된다. 그중에서 ‘화’와 ‘기울’이라는 병리가 하나의 병명으로 발전한 것이 화병(火病)과 울증(鬱證)이다.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의 한의병명에서도 울증과 화병이 대표적인 정신장애로 등록되어 있다.

과거 한의계에서는 오랫동안 화병이 가지고 있는 화(火)의 속성에 초점을 맞춘 문헌 연구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2004년에 김종우 등에 의해 정신장애로서 초점을 맞춘 화병의 진단기준이 정립되었다1).

화병의 핵심 신체증상은 가슴답답함, 열감, 치밀어 오름, 목이나 명치의 덩어리이며 핵심 심리증상은 억울하고 분한 감정, 마음의 응어리나 한이다. 이처럼 특징적인 심리증상에도 초점을 맞춤으로써 화병은 기존 정신의학의 진단체계에 빠져있던 ‘억울하고 분한 감정’을 대표하는 정서장애로 거듭나게 되었다.

한편 우울장애의 진단기준에 해당하는 증상 중 ‘우울한 기분’과 ‘흥미와 즐거움의 상실’ 등은 한의학의 울증, 전증(癲證), 탈영실정(脫營失精)과 연관된다. 우울장애는 그중에서도 울증에 대대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 대한한방신경정신과학회의 지배적인 의견이다.

화병 연구는 K-의학을 알리는 데 기여할 것

국제질병사인분류 11판 개정에 따라 전통의학 질병분류체계(ICD-11-TM)가 신설되었고, ICD-11-TM의 하위항목은 다시 ‘전통의학 병명(Traditional medicine disorder)’과 ’전통의학 병증(Traditional medicine patterns)’으로 분류된다. 전통의학 병명 중 ‘정신 및 정서장애’의 하나로서 화병과 울증이 등록되어 있다.

화병은 미국 정신의학회에서 한국의 문화관련증후군으로 분류한 적이 있을 만큼, 한국 문화와 관련이 깊은 정신장애인 동시에 화의 특성이 강조되는 한의학적 질병 개념이다.

지금까지 한의사를 비롯해 심리학자, 정신의학자들이 다학제적으로 모여 진단 및 평가기준을 정의하였고, 이후 다양한 분야에서 치료법을 연구하고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도 개발되었지만 여전히 연구결과의 확산과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화병 환자들은 억울한 상황이 개선되어야만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여 의료기관의 도움을 받을 확률이 낮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 중요한 정서인 분노를 기저로 한 질환은 국가에서 관리가 필요한 정신장애로, 이를 위해서는 한의학적인 해석과 치료 방법의 적용이 필요하다.

중국에서는 중국형 우울장애를 연구하기 위해 울증과 우울증의 간기울결(肝氣鬱結) 변증형에 대한 연구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홍콩에서 울증 환자를 대상으로 시행한 한 관찰연구에서 울증과 주요우울장애의 유사한 심리적 작용기전을 시사하는 결과를 보고하였고2), 저자들은 이를 토대로 연구자들은 울증이 서양에서의 기능성 신체장애(functional somatic syndrome)와 유사한 개념이라고 제시하고 있다3).

지금까지의 연구 경향을 종합해보면, 한국에서는 화병 연구를, 중국에서는 울증 연구를 주도하고 있다. 한의계가 화병 연구에 박차를 가함으로써 전통의학, 특히 정신장애의 분야에서는 고지를 선점해나가야 한다.

화병과 우울증은 공병률이 높은 질환이다4). 따라서 화병을 깊이 연구하다보면 자연스럽게 화병과 울증을 같이 연구하게 될 것이며, 화병과 울증의 연구를 통해 동아시아 전통의학에서 바라보는 정신장애를 스펙트럼적 관점에서 하나로 꿰뚫을 수 있을 것이다.

분노 문제는 한의약이 일차 선택이 될 수 있어

정신의학은 우울과 불안 정서에 초점을 맞추어 다양한 약물과 정신치료 기법들을 발전시켜왔으나, 억압된 분노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외면해온 것이 사실이다. 분노 문제를 다룬다고 해도 주로 분노 발작에 가까운 과도한 표출을 조절하는 것을 치료의 관심사로 삼고 있다.

하지만 화병에서 나타나는 신체적, 심리적 증상은 분노의 억압 때문에 발생한다. 분노를 억압하는 것이 과도하거나 오래되면,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한계에 도달해 결국 감정이 불안정해지고 표출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의약은 다양한 솔루션을 가지고 있다.

한의계에서는 화병의 치료 중재에 대한 연구가 비교적 꾸준히 보고되고 있는데, 한약으로는 분심기음과 시호가용골모려탕, 황련해독탕 등에 대해, 침치료로는 사암침법과 불면 증상 개선을 위한 침구처방 등에 대해 임상연구가 이루어졌다. 임상적으로는 한방정신요법 외에도 명상, 감정자유기법(EFT)과 같은 심신중재가 화병 환자에 적용되고 있다.

한의약을 통해 화병과 우울증 환자들에게 행복을

정신적 고통, 정신과적 문제 때문에 한방의료기관을 내원하는 환자들 중에는 “다른 곳을 다 다녀봤는데도 낫지 않아요”, “다른 곳에서는 이해받지 못했어요”라고 이야기하는 사례가 많다. 환자들의 고통을 단순히 ‘우울장애’나 ‘불안장애’로 범주화시키고 단순화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반증이다.

화병과 울증의 관점에서 정신과 환자들을 바라보는 것은 기존 정신의학의 관점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축이 될 수 있다. 이런 한의학적 접근은 기존의 틀 안에서 이해받지 못했던 환자들에게 자신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고,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대안이 될 것이다.

화병과 우울증 환자들이 힘들 때 한의원부터 먼저 방문하고 한의약을 통해 행복과 건강을 회복할 수 있도록, 통념을 깨는 연구를 계속해나가도록 하겠다.

참고문헌

1) 김종우, 권정혜, 이민수, 박동건. 화병면담검사의 신뢰도와 타당도. 한국심리학회지:건강. 2004;9(2):321-331.

2) Ng SM, Leng LL. Major Depression in Chinese Medicine Outpatients with Stagnation Syndrome: Prevalence and the Impairments in Well-Being. Evid Based Complement Alternat Med. 2018;2018:7234101.

3) Leng LL, Ng SM. Stagnation Syndrome: Relevance of the Multilayers of Illness Experiences in Chinese Medicine to the Understanding of Functional Somatic Syndrome. Psychosom Med. 2018;80(2):238-239.

4) 김종우, 정선용, 서현욱, 정인철, 이승기, 김보경, 김근우, 이재혁, 김낙형, 김태헌, 강형원, 김세현. 화병역학연구 자료를 기반으로 한 화병 환자의 특성. 동의신경정신과학회지. 2010;21(2):157-169.

서효원 학술연구교수